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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은 "젓갈" 을 만들고 세월은 곰삭은 "맛" 을 만든다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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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08-12-28 14: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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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684
맛객: 김용철  

 

 

 

후읍~ 기차에서 내려 숨을 들이켰다. 젓갈 특유의 비릿함과 쿰쿰한 풍취가 코끝에 전해온다. 젓갈의 고장 강경에 왔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다. 개찰구를 빠져 나오자 대합실 한쪽에 보이는 젓갈매장, 강경은 사람보다 젓갈이 먼저 이방인을 맞이한다.

 

  
▲ 강경역
ⓒ 맛객
 

역사를 빠져나오자 어둠이 몸을 감싼다. 순간…. 낯선 지역에 왔다는 설레임보다 쓸쓸함이 가슴 한켠에 파고든다. 역을 등지고 걸었다. 젓갈시장을 알리는 펼침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주차장을 관리하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이곳이 젓갈시장 맞나요?"
"재래시장이에요. 젓갈도 팔고 채소나 생선도 팔고…."


찾고자 하는 젓갈전문거리는 아닌듯했다.


"그럼 젓갈시장은 저쪽으로 가면 되요?"
"거긴 젓갈만 팔아요. 근데 어디가 젓갈시장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어요. 읍 전체가 젓갈시장이라고 보면 되요."

 

그랬다. 강경은 어딜 가든 젓갈 매장부터 눈에 띈다. 식당, 다방보다 많은 게 젓갈집이다. 황해도젓갈집의 이현달씨에 따르면 강경 ‘맛깔젓’이란 브랜드를 쓸 수 있는 정회원 업소만 해도 80여 곳에 이르고, 미등록 업소까지 포함하면 14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만하면 단일품목 업소로는 전국 최다이지 싶다.

 

발길…. 젓갈거리는 강경역에서 걸어 10여 분 못 미치는 데 있었다. 황산리를 시작으로 염천리 염천교 일대와 서창리를 거쳐 옛 강경의 번화가였던 중앙리까지 뻗어있었다. 20여 년 전만해도 세 집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젓갈 산지로 급부상한 셈이다. 한집 두집 늘어나던 젓갈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건 불과 4~5년 남짓 만의 일이다. 원조집 중에 한곳인 함열상회의 최순덕씨는 말한다.

 

"진짜 그때 그러니까 20여년 전까지만해도 세 집 있었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20~30집 있었을 거예요. 여기가 온통 젓갈동네로 급부상한 건 얼마 안됐어요. 한 4~5년 사이에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강경은 젓갈로 알려진 소래포구나 곰소항처럼 직접적으로 바다를 끼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젓갈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때를 거슬러 올라가본다. 강경은 예로부터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에 들 정도로 번성했다. 1원산 2강경으로 불리던 1920년대에는 1일 상인만 2~3만명이 활동했다고 한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였던 강경은 모든 농수산물의 집산지였다. 금강하구를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서해에서 해산물을 가득 실은 돛단배가 황산나루에 몰려들었다. 배가 들어올 때면 돌산(독산)의 등대에서는 불이 반짝반짝거렸다. 해산물은 포구바닥에서 즉석 경매가 이뤄졌다. 상인들은 팔고남은 조기나 새우 같은 것들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염장을 했다. 강경 젓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 저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백마강과 맞닿으면서 공주에 이른다
ⓒ 맛객
 
      권 효 가

     

              부모생육 그은혜는 하늘같이 높건만은
              청춘남녀 많은데도 효자효부 드문지라

              즐가하는 새아씨는 시부모를 싫어하고
              결혼하는 아들네는 사림나기 바쁘도다

              제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싫어 외면하고

              시끄러운 아이소리 듣기좋아 즐겨하며
              부모님이 두말하면 잔소리라 관심없다

              자녀들의 오줌똥은 손으로도 주무르나
              부모님의 흘린짐은 더럽다고 멀리하고

              과자봉지 들고와서 아이손에 쥐어주고
              부모위해 고기한근 사올줄을 모르도다

              개병들어 쓰러지면 가축병원 달려가나
              늙은부모 쓰러지면 노환이라 생각하네

              열자식을 키운부모 한결같이 키웠건만
              열자식은 한부모를 귀찮다고 싫어하네

              자식위해 쓰는돈은 한도없이 쓰건만은
              부모위해 쓰는돈은 한푼조차 아까우네

              자식들을 데리고는 외식함도 자주하나
              늙은부모 모시고는 외식한번 힘들구나

              살아생전 불효하고 죽고나면 효심날까
              예문갖춰 부고내고 조문받고 부조받네

              그대몸이 소중커든 부모은덕 생각하고
              서방님이 소중커든 시부모를 존중하라

              가신후에 후회말고 살아생전 효도하면
              하늘에서 복을주고 자녀에게 효들받네

     

    넘치던 해산물은 젓갈이 되고

     

    강경읍 서쪽에 자리 잡은 옥녀봉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금강 건너 부여에서 이사온 지 60년이 넘었다고 한다.

     

    "60년 전에도 젓갈집이 많았어요?"
    "세 집밖에 없었어요. 신진상회, 형제상회, 함열상회. 그때는 젓갈장수가 돈 많이 벌었죠."
    "그때요?"
    "예! 돈 많이 번다 해가지고 젓갈장수가 많이 들어왔죠. 강변에다 집을 지었다 하면 다 젓갈집이야."

     

    포구를 중심으로 젓갈집들이 즐비했을 테고, 밥집 술집마다 사람들로 번잡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볼 길 없다. 포구가 기능을 상실하면서 많은 젓갈장사가 떠났고, 또 철거되면서 겨우 몇 집만이 염천교 근방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황산나루는 세련된 공원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포구를 드나들던 배 몇 척만 젓갈전시장이 있는 둑에 설치되어 있어 그때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당시의 활기찼던 금강포구를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강경에 배 들어올 땐 참 좋았어. 그땐 사람들도 많이 오고, 강경읍내 있죠. 사람들이 못 댕겼어요. 걸려서."
    "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구요?"
    "예! 배 한참 들어올 땐 해산물 싸죠. 큰 홍어 있잖아요. 지게에다 지고 손으로는 질질 끌고 갔어요."
    "홍어도 이리 들어왔어요?"
    "예! 많이 들어왔죠. 강으로는 생선이란 생선은 다 올라오고 그랬습니다. 복쟁이(황복), 메기. 뱀장어 많이 올라왔죠."
    "어디에서요?"
    "저 바다에서 바다. 그랬는데 장항 군산 금강하구둑 땜시 갇힌 물 때문에 고기 안 올라와요. 다 썩은 거 아녀요. 쌔카맣게."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은 침묵의 강처럼 느껴졌다. 강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황산벌을 휘감고 있지만 하구둑이 생긴 이후 움직임을 잃었다. 강에서 서글픔이 짙게 묻어나는 건 포구에 넘쳐나던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젓갈문화를 꽃피웠던 금강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세월마저 움직임을 멈춘 듯한 강경포구
    ⓒ 맛객
     

     

     강경은 젓갈로 다시 살아나고...

     

    "언니야 양념젓갈을 먼저 드시면 새우젓 맛을 몰라요."

     

    지난 14일 찾은 강경젓갈시장은 김장철을 맞아 활기가 넘쳤다. 젓갈을 사러 온 아주머니들은 이것저것 맛보기도 하고, 아저씨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어떤 젓갈을 사갈까, 물어보기도 한다. 새우젓 한 바가지를 사면 덤으로 주는 양이 더 많을 정도다. 후한 인심, 어쩜 이것도 강경 젓갈 맛 중에 하나일수도 있겠다.

     

    "이렇게 3만원에 한 바가지 드리고, 고마워서 또 드리고, 맛있게 드시라고 더 드리고, 잘 가시라고 드리고, 또 오시라고 드리고…."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절로 흥이 날수밖에 없다.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택배주문도 많지만 그래도 예전 김장철 특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김장 한철에 막 몰려서 사러 오니까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자장면 한 그릇을 5분 안에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그렇게 바쁘게 하다보면 돈도 못받구 많이 그랬었는데. 지금은 김치냉장고 있어가지고…. 장사하는 입장에선 편해지긴 했어요."

     

      
    새우젓의 왕 육젓
    ⓒ 맛객
     

     

    새우젓 사진을 찍자 찍으려면 육젓을 찍으라고 한다. 새우젓 중에 육젓이 으뜸이라는 얘기다. 새우는 잡는 시기에 따라 오젓, 육젓, 추젓 등으로 나뉜다. 6월 산란기에 잡히는 새우는 크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껍질이 얇고 살이 통통히 올라 가장 맛이 좋다. 그래서 육젓을 최고로 칠 뿐만 아니라 가격도 가장 비싸다.

     

    매장 내 전화벨이 시끄러울 정도로 쉼 없이 울린다. 전국에서 걸려온 택배주문 전화이다. 젓갈 판매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역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그 시절에는 손님들이 들통이나 그릇을 들고 직접 사러왔다. 그 후 비닐봉지가 나오고 마이카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국에서 강경을 찾았다, 현재는 택배가 대세이다.

     

    중앙리 뒷골목에서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서리태를 말리고 있다. 가던 걸음을 잠시 멈췄다. 젓갈에 대해 물었더니 자기 고장 젓갈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목포, 여수 사람들이 여기다 팔고 다시 사간다니까유."


    원료인 새우나 조기를  팔고 다시 젓갈을 구입해 간다는 얘기이다. 강경젓갈은 ‘맛깔젓’이란 상표로 팔리고 있다.


    "왜 맛깔젓이에요?"
    "맛을 내는 젓깔이잖아유."

     

    아저씨는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젓갈에 대해 많이 설명해줬다고 하자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던진다.


    "새구(우)젓 장사나 하셔야겠네."

     

     

    젓갈 원조집 함열상회를 찾아서

     

     

    염천교 근방에 있는 함열상회는 주택과 옆 건물을 터서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매장을 늘려갔음을 알 수 있다. 시원스럽게 뻥 뚫린 다른 매장에 비하면 답답해 보일 정도이다. 이곳이 신진상회, 형제상회와 함께 강경젓갈의 모태가 된 집이다.

     

    "떡 드세요. 잡숴보세요. 우리 할머니 생신 떡이에요."

     

    일하는 아주머니가 내 놓는 떡을 집어 들면서 물었다.

     

    "할머니가 시작하신지 얼마나 됐어요?"
    "그러니까.... 이 자리가."
    "할머니 스무 살 때부터 시작했으니...60년이 되가는데..."
    "예 맞아요. 그러니 최고 원조집이죠."
    "저 집에 가도 원조라고 하던데요?"
    "아~네... 형제, 신진, 세집만큼은 원조라할수있지요. 강경에서 무척 오래된집이니..."

     

    지금이야 함열상회라는 상호를 달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그런 것도 없이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함열에서 강경으로 시집온 심은섭씨의 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이 방에서 수도 없는 사람 밥 먹고 갔어요. 우리들 점심시간 때 손님들이 안녕하세요? 식사하시네요 그러면, 식사안하셨으면 같이 와서 비벼요 이러면 아이고 그래도 되요? 하고 들어오는 양반도 있고. 옛날에는 없이 살고 어려웠잖아요. 밥 한 끼 같이 드시자고 하면 얼마나 고마워하면서 그분들이 그 집 참 인심 좋다고 소문내요. 그럼 다른 사람들도 함열에서 살다 이사 온 집 어디요? 그 집 인심 좋다는데 어디요? 물으면서 찾아오시다보니 어쩔수없이 자연스럽게 함열상회를 쓰게 된 거예요."

     

    함열상회 인심은 밥 한 끼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골 할머니들이 농사지은 거 감자 고구마 가지고 와요. 당신들은 그거를 장에 가서 팔아가지고 돈을 만들어야 김장젓갈을 사가지고 가요. 하루 종일 팔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물물교환을 하자고 와요. 당신이 이거 받고 젓갈로 달라고, 어느 집도 그걸 안 바꿔줘요 귀찮으니까. 왜, 거기에 사람 하나 딸려야죠. 물량이 얼만지 재야죠. 시세가 얼만지 서로 맞춰야지. 이래다 보니까 한 사람이 그 사람에게 붙어있는 시간도 그렇고 인력이 낭비가 되는 거예요. 여러 가지 손해예요.

     

    그러니깐 다들 다른 집에선 안 바꿔 준다고 그래요.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아버지는 바꿔줘요. 그럼 그분들 너무 고마워 가지고 가서 그 집 인심 좋다. 인심 좋다. 그래서 나중에는 뭐 바꿀 게 있으면 줄서가지고 있는 집이 이 함열상회 앞이에요. 그렇게 맥을 이어온 함열상회라는 거죠."

     

    그런 마음가짐으로 젓갈을 삭혀와서인지 함열상회는 20~30년 이상된 단골은 기본으로 많다고 한다. 중간에 다른 데 가서 사면 쌀까, 좀 더 나을까 싶어서 가셨다가도 결국 다시 함열상회를 찾는다고 한다. 이날 두 아들과 함께 젓갈을 사러 온 할머니 연세역시 족히 일흔 중반은 넘어 보였다.

     

      
    원조집 함열상회의 조개젓. 맛객은 이 맛에 반해버려 한 통 구입해와 아껴먹고 있는 중이다. 조개의 형체가 살아있으면서도 전혀 비리지도 않다. 느끼하지도 뒷맛이 텁텁하지도 않다. 지근거림도 없다. 불쾌한 잡내도 없다. 조갯살의 질감과 독특한 풍미는 그대로 살아있다
    ⓒ 맛객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면서 날로 발전하고 있는 강경젓갈, 그들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입맛이 변해 요즘 사람들은 짠맛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거기에 맞춰 자꾸 싱거워지는 젓갈에 대해 함열상회는 젓갈은 짜야 정상이라고 못 박는다.


    "짜고 오래 절궈진 게 변하지 않고 있어야 하거든요."

     

    요즘 사람 입맛에 맞추기 위해 염도를 줄인 젓갈은 오래 절일 수가 없다. 쉬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곰삭은 젓갈 특유의 맛도 없다. 대신 여러 가지 약품을 첨가해 맛을 내고 변질도 막는다. 천일염만 들어간 짠 젓갈과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들어가 짜지 않는 젓갈, 어느 것이 몸에 더 해로울까? 어쩌면 짠 게 더 해롭다는 생각도 편견일지 모르겠다. 젓갈은 시간이 만들어 낸 발효음식이다. 최승범의 <풍미기행>에도 ‘젓갈은 삭아야 맛이다’라고 나온다.

     

    김장 특수를 덜 누리는데 젓갈 집들은 갈수록 더 생겨나고 있다. 원조집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더 많이 생기는만큼 홍보도되고 더많은 사람이 찾아오게되니까 괞찬다는 생각이고요..글쎄요....아직 세집만 있다고 해봐요. 전국에서 몰려오는 이손님을 어떻게 다 해결해요. 못 해결해요. 그리고 세 집만 있으면 이렇게 유명해 지지도 않고. 자꾸 생기고 서로 공존하면서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더 유명해져 전국의 대표적 젓갈명소가 되는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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